1961년 5.16직후에 쓰신 함석헌의 이 글을 읽고 어찌하여 이런 글이 요즘 중등 교과서나 대학 교양으로 읽혀지질 않을까 한탄스럽기까지 하더군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나 피이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시카고 인디안 추장의 글은 명문으로 회자되어 청소년이나 젋은 층이 쉽게 접할 수 있건만 함석헌의 글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씁슬할 뿐입니다. 군사 독재 시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문민 정부이후 10수년이 지나도록 그런 작업들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제대로 조명받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심한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대오각성하고 함석헌을 사랑하고 흠모하는 우리들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함석헌과 그의 사상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어찌됐든 이 글은 함석헌 사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사자후를 토해내는듯한 힘이 살아있는 명문중의 명문일 뿐아니라 그의 전체 생명관,우주관,세계관이 모두 녹아들어있다 하겠습니다. 당시 어떤 철학자 어떤 역사가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겠는가 싶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불의에 맞선 투쟁만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함석헌 사상의 깊고 심오함, 동시에 넓고 장대함 때문인 것입니다. 아울러 적재,적소,적시 맹자식으로 천시,지리,인화의 요소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거죠. 또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영성,이성,감성이 상호 교섭하며 수미일관되게 물흐르듯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처럼 때로는 노도처럼 읽는 이의 영혼과 정신과 마음에 울림과 떨림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함석헌의 글에 당시 깨어있는 씨알들은 그나마 희망을 품고 그 암울한 시대를 견디며 투쟁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의 원천적 힘이 되었던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기독교적 시대의 말씀>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둘이 하나다. 뜻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절대요, 말씀은 그 뜻이 상대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정신인 동시에 물질이요, 심판인 동시에 구원이며, 역사인 동시에 계시다.
그러므로 우주에서는 하나님이 全이요, 역사에서는 민중이 全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다.
민중이 하는 시대의 말씀을 알아 들으려면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뭔가? 전체를 안음이다. 전체 속에 녹아버림이요, 풀어짐이다.
맹자의 말처럼 "그 기운이 한없이 크고 한없이 거세어서 참으로써 기르고 해하지 않는다면 누리에 그득 찬다."
<8.15와 4.19>
8.15해방이 온 후 곧 떠들기 시작한 말은 '하늘에서 떨어진 떡'이라는 것이다.
4.19 후 민주당 정권은 아무것도 새로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책망할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민중 자신이다.
4.19가 실패한 것은 민중 자신의 책임이다. "그럼 이젠 믿을 건 나 밖에 없다"하고 운명을 걸고 나서는 마지막 힘을 써 봤어야 할 것인데,
그러려는 기색은 안보이고 세상 꼴은 가속도적으로 어지러워가고 사회의 공기는 답답했던 것이다.
<5.16의 소리>
혁명은 일로는 이루면서 정신으로는 잃는 것이요, 병은 고치면서 아이는 죽이는 것이다. 목적은 선하면서 수단은 나쁜 것이 혁명이다.
수단이 나쁠 때 목적의 선은 남아 있지 못한다. 수단이 곧 목적이다. 길이 곧 종점이다. 길 감이 곧 목적이다. 그러므로 道라는 것이다.
너는 네 자신을 혁명하지도 못하면서 세상을 바로 잡는다고 잘못 자신한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았다. 그러므로 전체를 속였다.
혁명이 거룩한 정신의 운동이 되어서만 그 제단에 바친 제물은 살아난다. 일을 순화하고 건지는 것은 사상이기 때문이다. 살리는 것은 공로가 아니라 뜻이다. 그러므로 혁명 정신은 필요하지만 혁명은 못할 것이다.
혁명에 대하여 민중의 첫 마디는"잘했다." 두번째는 "그러나 잘 아니 됐다." 마지막은 "이렇게 해야 된다."하는 명령이다.
이 세 귀절 속에 변증법적 정신의 움직임이 있다. 과거에 대한 마감과 현재에 대한 알아봄과 미래에 대한 내다봄이 있다.
사람은 자기초월을 하는 것이다. 자기부정을 하지 않고 자기초월은 하지 못한다. 혁명은 누구를, 어느 일을 바로 잡는 것 아니라, 命을 바로 잡는 일, 말씀 곧 정신, 역사를 짓는 전체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4.19실패의 까닭>
한 마디로 전체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4.19는 아버지가 인정을 아니함으로 사생아로 되어 버린 가련한 혁명이다. 생명의 가장 높은 운동은 돌아옴이다. 생각이란, 정신이란, 창조주에게서 발사된 생명이 무한의 벽을 치고 제 나온 근본에 돌아오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알아봄이다. 돌아 갈 줄 아는 것이 큰 일이다. 혁명 곧 revolution은 다시 돌아감이다. 사람은 혼과 심정의 영물이라, 성격의 개조가 꾸중과 매채와 따짐만으로는 아니 된다. 너는 깊이 생각하라! 심정을 가지라. 칼은 쪼개겠지만 심정은 합한다.
<민족성의 개조>
모든 혁명 요소는 세 가지 요소로 되어 있다. 그 첫째는 지도 인물이요, 그 둘째는 조직이요, 그 세째는 이론이다.
그러면 이 세 요소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전체운동이다. 이를 다시 둘로 나누면 하나는 대중성이요, 다른 하나는 지속성이다. 민중과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 혁명의 힘도 끊어진다. 장자가 "참사람은 발꿈치로 숨을 쉰다." 한 것은 이것일까? 민중이 뭐냐? 하나님의 발꿈치, 나라의 발꿈치지. 지도자는 모가지로 숨을 쉬는 줄 알지만 발꿈치로 쉬는 숨을 끊을 놈이 누구일까?
<자아 개조>
민족성 개조가 자아 개조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 생각하는 것은 단체가 아니고 개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모든 종족적인 , 생리적인 정신적 능력은 개체 속에 유전되기 때문이다. 또 그 다음은 사람의 마음은 서로 감응되기 때문이다. 그 능력은 사람의 정신 수양의 정도에 따라 가지가지다. 인간은 일찍 부터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요가,참선,기도,정신통일,심령술,신유 등에 매달리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우주와 사람과의 교통도 이 감응하는 힘으로 된다. 맹자가 "마음을 다하는 자는 바탈을 알고 바탈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다." 한 것은 참 말이다.
<혁명과 종교>
혁명이 곧 종교요, 종교가 곧 혁명이다. 나라를 고치면 혁명이요, 나를 고치면 종교다. 종교는 아낙이요, 혁명은 바깥이다.
그 참 뜻을 말하면 혁명이란 숨을 새로 쉬는 일, 즉 종교적 체험을 다시 하는 일이다. 공자의 말로 하면 하늘이 명한 것은 性 곧 바탈이다. 바탈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을 고치자는 노력인 혁명은 바탈 찿음이다. 따라서 먼저 종교적 새로남이 있고 믿음의 굳센 것이 있어야 한다. 공산당이 무엇인가? 종교 없는 혁명 아닌가?
80~86페이지 ; 모세와 장량의 역사적 실례
<인격의 개조>
사람이라는 기계, 인격이라는 격도 일종의 틀이다. 생명이야말로 틀이다. 정말 기계의 시작은 생명이다. mechanism,organism이다.
"묘창해지일속" "만물개비어아" "지소무내 지대무외" 주관이 옳은가? 객관이 옳은가? 시간 속에 공간이 늙고 있나? 아니면 공간 속에 시간이 자라고 있나? 지,정,의 / 정,기,신(도교) / 몸,맘,혼(기독교) / 육근,팔식,사대(불교)
복숭아의 껍질, 살, 씨의 비유....중요한 것은 내 속의 仁을 깨닫는 일이다...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참 혁명은 제 속의 仁을 발견하고서야 된다.
<생명의 원리>
1. 일-다의 원리
2. 확산-수렴의 원리
3. 자유-통일의 원리
4. 생-사의 원리
5. 의식-몰아의 원리
생명의 근본은 스스로함, 인격의 본질은 자기초월
<죄 문제>
자연주의와 윤리주의 어느 것이 옳으냐? 그것은 번거로운 철학의 토론을 기다릴 필요없이 오늘의 세계 역사로 하여금 판단케 하면 된다. 쉘러의 말대로 세계 역사는 세계 심판이지. 세계와 인생의 근본에 윤리적인 근본을 부인하고 생물학적 생존경쟁의 달음박질을 한 결과는 오늘의 세계적 어지러움과 고민에 이르렀다. 인류는 또 한번 생각을 근본적으로 달리하게 될것이다.그렇지 않는 한 세계 구원의 길은 없다. 죄는 다른 것 아니고 빗나감이다. 원심력이다. 중심에서 떨어져 나가자는 버릇이다. 나는 내 본성이 제대로 있지 못하고 썩은 사람이다. "아,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혁명의 원리>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혁명의 원리는 죽어서 삶이다. 역사의 방향은 어쩔 수 없이 자유의 방향으로 놓였다. 힘 센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생명을 대접하는 자가 이길 것이다. 남을 죽이는 자가 살 것 아니라 스스로 잘 죽는 자가 저와 남을 다 살릴 것이다.
또 한번 말하자! 혁명 정신은 살려야 하지만 혁명은 못할 것이다.
<지원병>
새 사람됨이 거기 있다. 평화의 군대를 부른다. 무기를 드는 것 아니라 마음 하나를 든다. 새 시대의 정신에 몸을 던지라는 말이다.
그것이 정말 혁명이다. 그것이 정말 종교다. 내가 참을 하는 것 아니라 참이 나를 살릴 것이다. 그래 인간 혁명이다.